프로듀서 S,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삼성전자를 만나다
∙ 본문에 삽입된 사진은 전부 갤럭시 S7로 촬영됐습니다
눈을 떴다. 시선을 채운 건 낯선 천장. 잠이 서서히 깨면서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나흘째구나….’
여긴 인도 북부 잠무카슈미르(Jammu and Kashmir 州) 동쪽에 위치한 도시 ‘레(Leh)’.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에 포함돼 있으며, 오래전 아시아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 상인들의 종착지였던 곳이다. 레의 또 다른 특징은 해발고도 3500m의 고산지대란 점이다. 덕분(?)에 내리 사흘간 고산병으로 고생 좀 했다.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두통에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통증까지…. 도착 후 이틀간은 거의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었다.
▲해발 3500m 고산지대에 위치한 인도 도시 레의 풍경
▲레를 둘러싼 자연 풍광. 고산지대란 지리적 특성 덕분일까, 레에서 이런 절경을 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누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레에 머물기로 한 7일 중 촬영에 소요되는 기간은 나흘. 나머지 사흘간은 원활한 작업을 위해 현장 섭외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 참! 소개가 늦었다. 난 삼성전자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릴 영상 ‘당신의 히말라야는 무엇인가(What Is Your Himalaya)?’ 제작차 이곳을 찾은 프로듀서 S다(사람들은 대개 날 ‘S 프로’라고 부른다). ‘레 소재 브랜드숍에 삼성전자 물품을 나르기 위해 달리는 배달원’ 얘길 영상으로 담는 게 이곳에서의 내 임무다.
해발고도 3500m, ‘하늘 가장 가까이 있는’ 매장을 취재하라!
그 옛날 라다크(Ladakh)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레는 2016년 10월 현재 인구 약 3만 명 규모의 도시가 됐다. 도심 상점가를 장식한 간판 중엔 한국인의 눈에 유독 반가운 게 하나 있다. 파란 바탕에 ‘SAMSUNG’이란 흰 글씨가 선명한 삼성전자 브랜드숍이 바로 그것. 현지인을 대상으로 삼성전자 모바일 기기를 주로 판매하는 이곳은, 고도로만 따지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삼성 매장이다.
▲레 북부에서 만날 수 있는 삼성전자 브랜드숍. 삼성전자 매장 중 ‘하늘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이다
볼리비아·나이지리아·가봉·파타고니아…. 오랫동안 영상 제작자로 활동하며 세계 각국 오지(奧地)를 꽤 많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이번 ‘레 프로젝트’는 녹록지 않았다. 촬영지 사전 답사 한 번 못해본 채 기획 작업부터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출국 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거라곤 제한된 현지 정보를 ‘구글링(googling)’으로 찾아보는 게 고작이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지다 결국 두 손 두 팔 다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떠나자!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도착 나흘째, 첫 번째 촬영일이 밝았다. 고산병이고 뭐고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정신을 차리고 현지 코디네이터 A와 약속한 숙소 로비로 향했다.
▲나름 ‘오지 촬영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이 상당한 내게도 레에서의 촬영은 매 단계 도전의 연속이었다
▲오토바이로 질주(?) 중인 사람이 이번 영상의 남자 주인공이다. 연기 경력이 전무한 일반인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연기력으로 촬영진을 만족시켰다
“S 프로, 두통은 좀 나았어? 여기 우리 배우들 왔어.” 먼저 와 있던 A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 뒤로 영상에 출연할 남녀 주인공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참고로 이번 출장에선 레에 살고 있는 A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다. 촬영 장소 섭외에서부터 현장용 소품 조달에 이르기까지…. 그 덕분에 난관의 연속일 수 있었던 작업은 그나마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A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아슬아슬 주행’이 장장 1300㎞… 멀고도 험한 고객과의 만남
“자, 다들 모였으니 떠나볼까요?” 호기롭게 출발한 것도 잠시, 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난 ‘세상 겁쟁이’가 돼 있었다. 촬영지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도로 너비는 차 두 대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고, 그 옆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도로 상태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설상가상, 스태프를 태운 트럭 기사의 운전 솜씨가 지나치게 ‘터프(?)’했다. 차에 탄 내내 “추락 사고로 한 달에 한두 명은 죽어 나가는 곳”이라던 A의 말이 뇌리를 맴돌았다. 속절없이 밀려드는 공포감을 물리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알고 있는 모든 신(神)에게 기도 올리기’뿐이었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델리에서 레까지 이동하려면 위 사진처럼 깎아 지른 듯한 절벽 길을 1300㎞나 달려야 한다
▲이번 영상은 그 성격상 험준한 도로변에서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현지 관계자 얘길 들어보니 삼성전자 제품을 레 브랜드숍에 운송하려면 내가 달린 도로보다 훨씬 험준한 여정을 거쳐야 한단다. 실제로 삼성전자 물품 운송 트럭은 인도 북부 도시 델리를 출발, 1300㎞의 절벽길을 쉼 없이 달려야 비로소 레 브랜드숍에 도착한다. 해가 지면 상황은 더 위험천만해진다. 델리만 벗어나도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의지할 거라곤 자동차 헤드라이트뿐. 이마저도 끄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를 덮친다.
아, 물론 하늘 가득 쏟아져 내릴 듯한 별빛과 은하수가 장관을 이루긴 한다. 허나 ‘목숨 걸고’ 야간 주행을 계속해야 하는 운전자에게 그 따위 풍경이 의지가 될 리 만무하다. ‘이렇게 외진 곳을 거침없이 달려 사람을 만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구나!’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이란 사실이 새삼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해외 드론 반입 금지’ 인도서 촬영용 드론 공수, 성공할까?
대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고, 그 사이사이 ‘별일 없이 촬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동안 트럭은 우리 일행을 목적지에 내려놓았다. 레 도심에서 두 시간 반쯤 떨어진 거리의 이곳은 영상 도입부에 들어갈 드론 항공 촬영 분량을 찍기 위해 미리 찾아둔 장소였다.
사실 촬영용 드론을 입수하는 과정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촬영 전날 오후 여섯 시, 미리 섭외해둔 뭄바이 현지 드론 업체가 “아무래도 협조가 어렵겠다”며 말을 바꾼 게 발단이었다. “레 지역 해발고도가 너무 높아 드론을 띄울 경우 오류 발생 위험이 크다”는 게 업체 측 설명. ‘해외 드론 반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인도 규정을 감안, 어렵게 현지 업체 섭외를 결정했던 터라 더 난감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려는 찰나, 문득 전날 촬영 장소를 섭외하느라 이동하던 중 하늘 높이 떠 있던 드론의 광경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 드론의 주인을 찾자, 무조건!’ 이후 때아닌 ‘어제 레에서 드론 띄운 사람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맨땅에 헤딩’이 따로 없는 상황,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당초 예상과 달리 레가 상당히 넓게 분포한 도시란 사실도 알게 됐다. 당연히 ‘대충 이쯤 떠 있었던 (것 같은)’ 드론을 찾는 일은 한양서 김 서방 찾기만큼이나 힘들었다.
죽으란 법은 없다고 했던가, ‘솔루션’은 뜻밖의 경로에서 튀어나왔다. “아, 그거요? 며칠 전부터 열리고 있는 라다크 축제에 방송국이 촬영 나왔거든요. 그 사람들이 쓴 장비예요.” 한 현지 스태프의 단비 같은 목격담을 바탕으로 ‘드론 입수’ 시도에 다시 불이 붙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때마침 우리 팀이 묵고 있던 숙소 주인이 “그 방송국 사람들과 연이 있다”며 다리를 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기적처럼 방송국 드론 팀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촬영지 출발을 불과 30여 분 남겨놓은 시각이었다.
▲이번 출장에서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촬영용 드론을 공수하는 일이었다. 아래 사진은 우여곡절 끝에 확보한 드론을 띄워 촬영하는 모습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다소 폐쇄적인 데다 군사지역이기도 한 장소에서의 촬영은 쉽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에 대한 경비가 유독 삼엄한 현지 분위기 때문에 매일 아슬아슬한 일정이 이어졌다. 난관은 또 있었다. 촬영지 대부분이 건조한 산악지대인 탓에 한 발짝만 떼어도 미세한 분진이 물안개처럼 피어 올랐던 것. 레에 도착한 지 만 하루도 되기 전에 스태프의 입술이 하나둘 트기 시작했다. 몇몇 예민한 스태프는 며칠 만에 기관지가 상해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촬영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삼성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고객, 그리고 그 고객을 위해 천리 길을 달려 제품 운반에 나서는 사람들의 얘길 영상으로 담겠다’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스태프가 ‘중무장’에 나섰다. 마스크로, 수건으로 코와 입을 겹겹이 감싼 채 촬영은 계속됐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 응원에 기운이 절로… “오길 잘했다!”
▲촬영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삽시간에 스태프 주변으로 몰려들어 장비를 신기한 듯 구경했다
“아저씨, 이게 뭐예요?” “와, 신기하다!” “어, 나 이거 뭔지 아는데!” 고산지대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레 지역 아이들에게 외국인 관광객이나 그들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지극히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우리 스태프가 지닌 첨단 영상 촬영 장비는 그들 눈에도 퍽 신기했던 모양. 촬영 팀이 길을 나서면 어디선가 귀신같이 뛰어나와 장비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곤 쉴 새 없이 조잘댔다. “저도 나중에 크면 감독이 될 거예요.” “난 스마트폰 파는 사람이 될 거다.” “그럼 난 스마트폰 만드는 사람!”
그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녀도 크게 다르지 않고 매번 신기한 게 아이들이란 존재다. 촬영 막바지,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그러더니 이내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촬영 장비들을 가리키며 이것저것 물어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러곤 생각했다. ‘좀 고생스럽긴 해도 오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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