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을 뒤집다 ③교육_첨단 기자재는 ‘빙산의 일각’
옛날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혹자는 흰 무명 바지저고리 차림에 머리는 길게 땋은 채 서당에 줄 맞춰 앉아 목청껏 “하늘 천(天), 따 지(地)…”를 외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영미문화권에 속한 사람이라면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1812~1870)의 1850년작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의 한 장면이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고전을 외다 한 줄이라도 틀리면 사정 없이 두드려 맞던 소설 속 주인공 코퍼필드의 애처로운 모습 말이다.
‘속성이 보수’ 교육계, 절대 안 바뀐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교육 현장 분위기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교사와 학생 간 관계나 교과목 편성 방식, 교과서 내용도 150년 전이나 200년 전의 그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꽤 커진다. 하지만 단 하나, 교수법(敎授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주류를 이루는 건 말할 것도 없이 ‘주입식 암기교육’이다.
심지어 최첨단 IT 기기로 무장된 21세기 교실 쪽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와 관련, 미국 시민단체 ‘교육개혁을 위한 민주주의자(Democrats for Education Reform)’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인 조 윌리엄스(Joe Williams)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첨단 기술이 발달하며 어느 직장에서나 일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초등학교는 이 같은 변화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실에 컴퓨터 몇 대 갖춰졌다 해서 그걸 혁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가르치는 방식은 지금 교사가 학생이었을 때와 비교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걸요.”
교육은 여러 사회 부문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분야다. ‘프랑스 대표 석학’으로 꼽히는 인류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육 체계의 주된 역할은 주류 집단의 문화 재생산이다. 주류 집단이 ‘가치 있고 보존할 만하다’고 여기는 내용을 규정, 교육 체계(와 그 종사자)를 통해 대대로 전달되게 함으로써 해당 가치관이 유지되도록 힘쓰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주장에 따르면 교육이 보수적인 건 필연적 현상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진짜 변화는 ‘주변부서 서서히’ 시작돼
“이게 절 존중하는 사람이 만든 음식 같아 보이세요?” 미국 어느 초등학교의 급식 식당. 한 아이가 커스틴 샌즈 토비(Kirsten Saenz Tobey)을 쳐다보며 반문했다. 토비는 미국 급식 업체 ‘레볼루션푸드(Revolution Foods)’의 공동 설립자. “아이들이 건강하게 섭취할 수 있는 식사를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레볼루션푸드를 론칭한 그는 연구조사를 목적으로 미국 전역 초등학교 식당을 돌며 아이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아이의 ‘돌발 질문’에 말문이 막힌 토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한 학교 급식을 제공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데일리 바이트(Daily Bite)’를 개발했다. 데일리 바이트는 사용자에게 건강∙영양 관련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매일 주어지는 메뉴를 사용자 스스로 훑어본 후 선택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본인이 골라 먹은 음식에 대한 피드백도 보내준다. 토비는 그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무엇보다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소통 체계가 필요하겠구나!’
토비의 시도는 이제껏 교육 개혁을 부르짖으며 노력해온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분야에 속해 있다. ‘고작 급식 메뉴 하나 스마트폰 앱으로 고를 수 있게 됐다고 교육 시스템이 바뀌겠어?’ 어떤 이는 이렇게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데일리 바이트 앱이 바꿔놓은 초등학교 급식 풍경이야말로 학교 문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의 한 장면이란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은 종이 위에 쓰인 흑백 글씨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보다 PC 화면에 떠오른 이미지와 단어 간 연관성을 파악하는 일에 더 능숙하다. 철자 하나 틀릴세라 연필을 공책에 꾹꾹 눌러 써가며 용을 쓰는 대신 키보드 자판 두드리는 데 온통 신경이 팔려있다. 자신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세상의 모든 정보와 지식이 총망라돼 있단 사실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는 세상인 만큼 교육 역시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교육을 바꾸는 디지털’ 관련 담론이 무성하다. 이 담론들이 전개하는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중요한 변화 하나가 드러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주어지는) 과제 수행 방식으로 디지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단 사실이 그것. 일반적으로 과제는 ‘이미 배운 내용’을 좀 더 오래 기억하도록 반복하는 형태도 있지만 대개는 ‘아직 배우지 않은 내용’ 관련 자료를 조사해가는 형태다. 이 경우, 인터넷 세대는 전에 없이 비상한 능력을 발휘한다. ‘위키피디아’ ‘프로젝트 구텐베르크[1]’ ‘오픈 컬처[2]’…. 성인도 사용이 익숙지 않은 온라인 지식 제공 웹사이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때문이다.
한때 이런 상황은 종종 비관과 우려의 시각으로 해석됐다. 특히 1990년대 인터넷 보급률이 급증하고 정보가 말 그대로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대다수의 지식인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잘못된 지식으로 피해 입게 될 소비자”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하지만 다시 거의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 소비자들은 거대하고 세찬 정보의 물결 속에서도 의외로 방향을 잘 잡아 헤쳐가는 모양새다. 실제로 미국 온라인 대학 강의 서비스 업체 ‘온라인 코스(Online Courses)’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어린 학생일수록 오히려 무한한 정보 중 자신에게 필요하고 타당성 있게 여겨지는 정보를 빨리 선택할 줄 알았다.
디지털 세대는 또한 과제를 해결할 때 타인의 협력도 온라인으로 쉽게 구한다.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 지식 공유 공간에서 흔히 발견되는 “내일까지 숙제 해가야 하니 급히 알려 달라” 유(類)의 질문도 사용 언어가 영어로 확장되면 차원이 달라진다. ‘커버 가능 범위’가 지구촌 전체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학생 간 교류가 활발해진다’는 사실은 디지털이 바꾸고 있는 교육, 그 변화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 변화 이끄는 선구적 사례 몇 가지
보수적 풍토가 깊게 뿌리 내린 교육계에도 척박한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며 마침내 열매를 수확하는 선구자가 존재한다. 전반적으로 바뀌지 않았을 뿐, 디지털 문화를 교육에 접목해 교실 풍경을 크게 바꾼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삼성전자가 시행 중인 스마트스쿨, 그리고 주니어 소프트웨어 아카데미(이하 ‘주소아’)다.
지난 2012년 처음 도입된 이래 적용 지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스마트스쿨<아래 사진>은 도시와 도서산간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를 목표로 삼성전자가 전국 초·중학교에서 펼치고 있는 사회공헌 프로젝트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최신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정보통신기술)을 활용, 학생별 맞춤 학습을 지원하는 미래형 교육 프로그램으로 올해까지 도합 5년간 50개교 123개 학급에 혜택을 제공했다. (스마트스쿨이 바꿔놓은 교실 풍경을 좀 더 상세하게 알고 싶다면 지난 10월 12일자 스페셜 리포트 ‘교실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스마트스쿨의 변신이 반가운 이유’를 참조할 것)
2013년 시작된 주소아는 소프트웨어 저변 확대와 미래 인재 양성을 목표로 역시 삼성전자가 진행 중인 소프트웨어 교육 기부 프로그램이다. 학기 중, 방과 후 수업 시간을 활용해 이뤄지는 수업은 여느 교육과 달리 ‘놀며 공부하는’ 환경이 최대 특징이다. 주소아에선 까다로운 논리 알고리즘 지식도 애니메이션과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가볍게 이해시킨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문제 해결 능력과 사고력을 스스로 키운다.
소프트웨어 교육 부문에서 삼성전자의 투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본적인 코딩 교육은 물론, 수업 콘텐츠와 교수법까지 혁신적으로 바꿔가는 삼성전자의 노력 역시 지난해 8월 5일자 스페셜 리포트 ‘IT 시대 만국 공용어, 코드(code)에 주목하라!’ 편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비단 교육 프로그램 자체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주어진 영역 안에서 디지털을 활용, 놀라운 성과를 거두는 사례는 세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아씨(Açı)고등학교 재학생들은 2개월에 한 번씩, 순전히 자력으로 온라인 뉴스레터를 제작한다. 전 세계 독자에게 배포되는 이 뉴스레터가 주목 받는 비결은 상호작용성(interaction)에 있다. 실제로 편집진은 전 세계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는다. 당연히 원고는 물론, 댓글도 세계 각국 언어로 자유분방하게 달린다.
모든 게 바뀌어도 마무리 주체는 ‘사람’
‘디지털 교육 개혁의 선구적 이론가’로 불리는 미국 저술가 조지 시멘스(George Siemens)는 디지털 시대의 교육 원리를 ‘커넥티비즘(connectivism)’이란 신조어로 규정한다. 커넥티비즘은 교육을 ‘지식과 경험의 총합’으로 정의했던 과거 이론을 전면 부정한다. 시멘스에 따르면 커넥티비즘을 대표하는 3대 키워드는 ‘네트워크’와 ‘좁은 세상’, 그리고 ‘약한 유대감’이다. 과거 교육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 유지에 기여했다면 21세기 교육은 중심에 선 소비자가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자유자재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단 해석이다.
미래 교육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 최근 온라인 공간을 들끓게 하고 있는 디지털 교육 관련 담론을 종합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은 논점이 제기된다.
일부에선 ‘이렇게 디지털이 모든 걸 뒤집어놓으면 교육의 근본마저 흔들리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디지털 기술이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자꾸 커지면 종국엔 인간의 역할까지 실종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디지털이 야기하는 교육 분야 변화에 관심을 가져온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변화가 제아무리 극심해도 그걸 마무리 짓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란 얘기다. 이들은 “교실 풍경이 아무리 첨단으로 바뀌고 교수법도 학생들의 잠재력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해도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이끄는 건 사랑으로 학생을 이끌려는 교사의 태도”라고 강조한다
교육을 바꾸는 디지털의 위력은 아직 본격적 가시권(可視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세는 마치 이른 봄, 여전히 살짝 언 들판을 뚫고 나오는 풀잎을 연상시킨다. 표면적으론 얼어있는 회갈색 땅처럼 보일지 몰라도 머지않아 놀라운 속도로 사방을 초록색으로 바꿀 것이다. 숨가쁘게 진행 중인 디지털 교육 혁신 과정은 ‘이 모든 변화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여린 풀잎을 그늘 깊은 나무로 성장시키는’ 주체가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이란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1] Project Gutenberg. 각종 자료를 모아 전자정보로 저장, 배포하는 프로젝트. 1971년 미국 저술가 마이클 S. 하트(Michael S. Hart)가 시작했다. 인쇄술을 발명, ‘지식 전달 선구자’로 여겨지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이름에서 명칭을 따왔다
[2] www.openculture.com. 문화∙교육 분야 멀티미디어 자료를 온라인상에서 누구나 무료로 검색할 수 있는 웹사이트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