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는 커피, 기억에 남는 카페. 실버 바리스타의 카페 休(휴) 13호점
흔히 ‘은퇴’나 ‘노후’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느껴지기보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서 오는 막막함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생활’이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기 때문. 특히 IT 등의 최첨단 기술이 사회의 중심이 되면서 더더욱 사람들은 노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그저 현대사회에서 노인은 복지와 관리의 대상일 뿐,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방법이 마땅치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수명은 점점 늘어나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하고 즐거운 제2의 인생을 보낼 수 있을까? 노년이 길어지는 만큼, 그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지고 있는 시기다. 하지만, 꼭 첨단 사회를 따라가야 좋은 노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 꽤 괜찮은 노후의 모범이 될만한 예시가 있다. 삼성전자 뉴스룸이 만난 박정옥씨. 지금 70세의 나이로 바리스타가 되어 새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하기보다, 자신의 관심사를 일거리로 만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평소 커피를 좋아했지만, 바리스타가 될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정옥씨가 처음 바리스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곳은 바로 복지관이다. 은퇴 후, 소일거리를 하려고 찾아간 곳이 바로 평택 남부 노인 복지관(고은자 관장)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처음 정옥씨의 마음을 끈 것은 ‘바리스타’가 아니라 ‘글쓰기’였다.
“제가 원래 시 쓰는 걸 좋아했어요. 시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탄 적도 있고, 평택시에서 개최하는 백일장에 당선된 적도 있었죠.”
그녀의 글 실력에 관심을 보인 한 기자의 권유로, 정옥씨는 2010년부터 평택시 지역 신문에서 시민기자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는 평택시 시민기자로 3년간 일을 하다가, 평택 자치 신문으로 옮겼고, 현재까지도 시민기자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녀와 ‘바리스타’의 인연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취재와 인터뷰를 다니게 된 그녀. 평소 ‘커피’는 좋아했지만 커피를 만드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었는데, ‘커피숍’ 취재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피를 만드는 일 자체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09년,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1기 수강생으로 등록한 것이, 그녀가 처음으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막상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지만, 커피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평택에도 노인 일자리 지원차 카페를 운영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그래서 과감히 도전을 해봤어요. 막상 지원하고 보니, 힘든 점이 많았어요. 4주간의 교육 과정도, 실제로 영업을 위한 준비도, 생각만큼 만만한 일은 아니었죠. 특히 나이가 들어서 감각이 둔해져서 커피를 만드는 것 자체도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커피 맛을 좀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되어서,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어요”
2017년 7월 17일. 그녀가 바리스타로 근무하는 카페 休(휴) 13호점이 개점식을 하고 문을 열었다. 그녀를 만난 당일, 아직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였다. 흔히 나이가 많아지면 두려움도 많아져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이들에게 그녀는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계속하니까 오히려 삶에 활력이 생기고, 건강에도 도움이 돼요. 먼저 복지관에라도 다니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과감히 도전하세요. 도전하는 것을 싫어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없어요.”
영업 준비를 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마치 사회 초년생의 열정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기분탓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74세의 언니부터 67세의 막내까지. 그녀들의 테이크아웃 커피점. 카페 休(휴)
물론 카페 休(휴)에 박정옥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평균 나이 70세에 육박하는 4명의 실버 바리스타들이 1명의 매니저(홍아란, 34세)의 도움을 받아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정옥씨를 포함한 실버 바리스타 김창남(74세), 김정의(67세), 송복순(70세)씨는 말했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오늘’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고, 바리스타로 일하기에 너무 많은 나이 따위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라고.
카페 休(휴)는 삼성전자 사회공헌센터가 주축이 되어 공공기관과 함께 지역사회의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작한 사회공헌 활동이다. 2011년, 삼성전자는 ‘리사이클링’이 가능한 사회공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짐을 느끼고, 용인시와 함께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방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용인의 카페 休(휴) 1호점이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장이 있는 용인, 화성, 오산, 평택을 중심으로 카페 사업을 확장했다. 카페를 설치할 장소를 제공해주는 시청과 업무를 위탁해서 운영 관리를 해주는 복지 기관, 그리고 카페 개소를 위한 제반비용(건축시공, 인테리어, 커피설비)을 담당하는 삼성전자가 주축이 되어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간 셈. 하여 현재 평택시에 13호점을 개설하기까지 13개의 카페를 통해 약 75명의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었다.
단순한 ‘기부’, ‘봉사’가 아닌 자생 가능한 사업
카페 休(휴)가 특별한 이유는 그저 나이 많은 바리스타를 기용해,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은 아니다. 카페 休(휴)가 가지는 의미를 짚어보면 첫째, 설립에 드는 사업비를 단순히 기업이 충당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NH 농협 평택시지부에 설립된 카페 休(휴)를 만드는 데 사용된 사업비는 총 6,000만 원이었다. 이 비용은 삼성전자의 임직원들이 각자 십시일반으로 기부를 통해 마련된 후원금이다. 단순히 생색내기용 후원금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금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카페 休(휴)라는 공간 자체를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다. 두 번째 의미는 이 사업이 그저 기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카페라는 명목으로 어르신들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고, 약간의 돈을 기부하는 정도로 운영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12개의 카페 休(휴)를 살펴보면, 실제 매출의 30%를 보수, 유지를 위해 적립하고 남은 돈으로 인건비와 재료비를 충당해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 카페를 통해 어르신들이 부귀영화를 누릴 수는 없겠지만, 본인들의 손으로 직접 커피를 만들어 팔고, 그 수익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어르신들에게도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68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더 이상 노인들의 부양을 자녀에게 전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노인의 부양 문제를 가정의 문제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노인 문제가 곧 사회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때다. 물론, 노인들을 국가와 사회가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에게는 아직 충분히 스스로를 부양할 만큼의 ‘액티브함’이 남아 있다. 즉, 노인을 보살펴준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사회생활’을 지속할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자리를 마련한 카페 休(휴)에서 일하는 평균 나이 70세의 실버 바리스타들을 보라. 그녀들은 어느 청춘보다 건강하고, 오랜 연륜만큼 노련하다. 다른 어르신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기회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자기 몫을 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노인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해결법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실제로 어르신들을 사회 현장으로 복귀시켜주는 삼성전자의 카페 休(휴)가 그 질문에 대한 작은 힌트가 되어주지 않을까. 여전히 현장에서 활발히 일하는 그녀들을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저렇게 살아야지’라는 다짐의 계기가 되고, 동년배들에겐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불어넣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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