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 시대, 기업의 ‘돈 버는 법’도 바꾼다
구글이 네스트(Nest Labs)를 인수한 건 2014년 1월이었다. 스마트홈용 온도조절기와 화재경보기를 만드는 이 회사의 인수 당시 가격은 32억 달러(약 3조6000억 원). 구글의 네스트 인수를 둘러싼 의견은 엇갈린다. 한편에선 “전략적으로 성공한 인수였다”고 호평하지만 다른 편에선 “인수 이후 더 이상의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 받는 것. 특정 현상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건 섣부를 수 있다. 다만 인수 직후 자사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네스트가 기울여온 노력을 들여다보는 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이다.
구글에 인수된 후에도 ‘승승장구’ 네스트… 비결은?
구글이 네스트에 관심을 보인 건 (온도조절기나 화재경보기 같은) 하드웨어 제품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구글에 인수됐을 당시 네스트는 신생 기업으로선 드물게 10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음성인식∙빅데이터∙인공지능 등 하나같이 차세대 기술로 각광 받는 것이었다. 실제로 네스트의 기술과 인력은 구글이 음성인식 기술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나 음성인식 기반 스피커 ‘구글홈(Google Home)’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걸로 알려지고 있다.
2017년 9월 현재 네스트의 주요 인력은 구글로 자릴 옮겼거나 퇴사했다. 기업 규모도 자연히 축소됐다. 하지만 네스트의 기업 가치는 여전히 8억 달러(약 9000억 원)에 이른다. 구글이 인수한 금액에 비하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네스트가 신생 제조 기업인 점, 인수 이후 구글이 네스트에서 확보한 인재와 지적 재산 등을 감안하면 결코 낮은 금액이 아니다. 실제로 네스트는 대당 가격이 249달러(약 28만 원)인 학습형 온도조절기(Learning Thermostat)를 월 4만 대, 많게는 5만 대씩 출하하고 있다. 화재감지기 ‘네스트 프로텍트(Nest Protect)’ 역시 타사 동종 제품보다 가격이 다섯 배 이상 비싼데도 인기가 높다.
올해로 설립된 지 7년, 본격적으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치면 이제 고작 삼사 년밖에 안 된 기업이 이렇게 선전하고 있는 비결은 뭘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돈 버는 방법’을 바꾼 데 있단 게 내 생각이다. 고객에게 제품을 팔며 돈을 벌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 고객이 돈을 벌도록 해줌으로써 제품 판매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네스트 덕에 돈을 벌게 된 고객이 더 많은 네스트 제품을 구매하고 그 결과, 네스트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기업 고객 웃게 하는 ‘인터넷 연계 온도조절기’ 시장
네스트가 처음부터 이런 생각으로 제품을 개발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구글과 만난 이후 사업 전략을 바꿨단 사실이다. 네스트는 구글에 인수되고 나서,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구글을 등에 업고 타깃(target) 고객을 ‘개인’에서 ‘기업’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네스트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제품의 가치가 개인 고객보다 기업 고객에서 더 크게 인정 받는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 즈음, 지역 전력회사나 화재보험사가 네스트 제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네스트가 만들어 파는 가정용 온도조절기나 화재경보기는, 얼핏 생각하면 주택 건설 시 반드시 필요한 제품인 만큼 건설업자나 주택 설비업자의 관심을 가장 먼저 끌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연결성(connectivity) 없는 전통적 제품에 국한된다. 제품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그 상태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활용성을 갖추면 온도조절기나 화재경보기는 단순 주택 설비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네스트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신규 기업 고객 역시 그 가치를 눈 여겨보기 시작했다.
네스트 가정용 온도조절기는 고객의 사용 유형(pattern)을 분석, 자동으로 에어컨을 켜고 끄는가 하면 온도도 조절해준다. 개인 고객이 이 제품을 쓰면 당연히 편리할 테고 전기요금도 어느 정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만약 이들 온도조절기를 한데 묶어 제어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 가정의 이용 유형이 모이면 발전소는 발전량을 그에 맞춰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기 사용량이 최적화돼 발전소를 추가로 짓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화재경보기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연결된 화재경보기는 연기나 이산화탄소 발생 유형을 분석, 화재 발생 사실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사실은 건물 관리자와 소방서 담당 부서에도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화재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히면 화재보험사의 비용은 크게 낮아진다. 수익구조가 개선되면 보험료도 내려간다.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스트 제품을 사용한 덕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 지역 발전소와 화재보험사는 그 비용으로 다시 네스트 제품을 구매해 자사 고객에게 무상으로, 혹은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또한 자신들이 제공하는 상품 가격을 할인해주기도 한다. 자신들과 거래하는 고객이 돈을 절약할 수 있게 돕고, 그 결과는 다시 신규 고객 유치로 이어져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다. 요컨대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며 기업의 돈 버는 방식까지 바꾼 것이다.
“고객에게 실질적 혜택 제공하는 기업만 살아남을 것”
최근 네스트처럼 사물인터넷 제품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핏빗(Fitbit)이나 미스핏(Misfit) 같은 스마트밴드 공급 기업이다. 이들 역시 초기엔 네스트처럼 개인 고객을 상대했지만 삼사 년 전부턴 건강보험사 등의 기업 고객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개인에게 스마트 밴드는 단지 활동량 정보 제공 장치에 불과하지만 건강보험사나 기업 고객 입장에선 자사의 손해율(loss ratio, 수입보험료 대비 지급보험금 비율)을 낮추거나 직장의료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험료 인하는 신규 고객 유치나 임직원의 건강 상태 관리를 통한 생산성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이 같은 전략 수정의 배경은 간단하다. 그저 제품을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 고객에게 실질적 혜택을 제공, 제품이 실제로 많이 팔리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엔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 매출 증대와 관련된 각종 지표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사물인터넷 제품의 특성이 있다. 그 덕에 기업은 데이터에 기반해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한편, 한층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해갈 수 있다.
이제 ‘제품 팔아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 사물인터넷 세상을 살아가는 기업은 자사 제품(혹은 제품이 제공하는 데이터)을 이용, 고객이 돈을 벌도록 해줘야 한다. 고객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기업 매출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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