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금도(飛禽島) 여행 – 잠깐의 일탈

2010/08/22 by 블로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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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20대 후반~30대 초 중반)까진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시골”이 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도시에서 나서 자랐을런지는 몰라도 최소한 (외)조부모님들이 계신 곳은 시골이었다.

나에겐 춘천이 시골이었다. 강원도 도청소재지면서 비교적 큰 도시인 춘천이 어떻게 시골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큰 이모(막내이신 어머니와 스무 살 넘게 차이 나신다)댁이 춘천에서 과수원을 하며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는 시골냄새를 맡았다.

닭목을 비트는 모습도 직접 보고, 수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살모사에게 물린 뻔 한 적도 있고,
지천에 널린 과일을 따서 먹어본 적도 있고,
수세식 화장실이 없어서 신문지 깔고 일을 보는 게 일상이었다.
나에겐 춘천 과수원은 곧 시골이었고, 자연 그 자체였다.

20대가 된 이후로 나는 시골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남들 다 갔다는 농활도 못 가봤고, 혼자 하던 국내여행에서도 나는 그냥 여관방에 하루 묵는 여행자였다. 농사를 거의 접은 춘천 과수원 근처에도 아파트는 들어찼다.

초록색이 그립고 콘크리트에 지쳐갈 무렵, 서른 살의 여름에 나는 예기치 않게 바다에서 시골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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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

내가 알기로 비금도의 공식적인 주소이다.
– (서울에서 보기엔) 서쪽 땅 끝에 있는 목포에서 배 타고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섬.
– 섬이지만 주업은 농업이며 소금과 시금치가 유명한 곳.
– 차를 타고 질주할 수 있는 백사장(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는 곳.
– 새(禽)가 나는(飛) 형상이라 해서 비금도


내가 글로 설명할 수 있는 비금도는 이 정도이지만, 이틀 동안 경험한 비금도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직접 뻘에 들어가 두 손만으로 모시조개를 한 망태기 잡기도 했고, 목까지 물이 차는 깊이까지 바다에 들어가서 그물을 쳐서 숭어와 꽃게를 잡기도 했다. 평소에 먹어보기 힘들었던 다금 바리/민어/병어회까지 먹으며 ‘아 이제 회가 지겹다’라고 생각까지 했으니 배부른 여행이기도 했다.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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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여름을 거치며 너무나 지쳐있었다. 매일 밤10시 퇴근이 기본이었던 업무 특성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주위 사람들에게 까칠해지고, 모든 게 싫어지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닌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서/공부/운동 할 시간도 없이 일하는데,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등등의 생각을 하며 점차 부정의 싹에 물을 주는 철학자가 되고 있었다.

이때 가까운 선배 한 명이 비금도행을 제의했다. (사실 이 선배의 고향이 비금도이다.)
몇 년 전부터 가자~가자~했던 비금도 여행이 점차 열매를 현실화되어 가고 있었고,
드디어 날짜와 멤버가 정해진 것!!
내 비록 서른 살이지만 이번 여행 멤버 중 막내였다. 서른 살의 막내.
내가 ‘서른 살’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걸까? ^^

여하튼 이번 여행에서 내가 원하던 것은 대자로 누워 취하는 휴식도, 해변에서 썬텐을 하고 있는 예쁜 언니들을 구경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원하던 것은 바로 조개잡이와 고기잡이!! 업무 외에는 머리 쓰는 것보다 몸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체험식 휴가는 꿈만 같은 것이었다. 선배가 짜놓은 일정 속의 ‘뻘에서 조개잡기’와 ‘염전에서 일해보기’가 나를 유혹했다. (결국 염전체험은 취소됐지만..)

금요일 업무를 일찍 끝내고 여행 멤버들과 함께 목포로 향했다. 때마침(?) 장마철의 막바지를 지나고 있어서 비소식이 있었고, 우리는 ‘그렇지만 맑은 비금도’를 꿈꾸며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여행의 가장 즐거운 동무인 ’90년대 댄스가요’를 미처 챙기지 못했지만, 센스 쟁이 선배가 주머니에 넣어 온 닌텐도 올림픽이 즐거운 여행길을 만들어 주었다.



목포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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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는 거의 오후 10시가 되어서 도착했다. 비금도행 배는 이미 끊긴 상태였기 때문에 다음날(토요일) 오전 배를 타기 위해 목포 북항(北港) 근처에 숙소를 잡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항구로 나왔다.

오늘의 저녁감은 양식 다금 바리와 (아마..)우럭회. 솔직히 피곤하기도 하고, 전 국민의 폭탄주 소맥과 함께 먹어서 그런 지 다금 바리의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뚜렷이 기억에 남는 건 아직까지 적응되지 않은 전라도 사투리의 착착 감기는 맛~. 다른 선배가 목포는 깡패가 많은 무서운 곳이라고 했지만, 늦은 밤 조용한 항구에는 적막감만 감돌 뿐 회 칼 드신 분은 횟집 이모님들 뿐 이었다.^^

목포 북항

 목포 북항


출항~! 비금도로 향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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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2시까지 당구장에서 목포를 맞이하여 주었건만, 매정한 새벽의 종소리는 4시 반에 울렸다. 배가 곧 뜰 거라면서 당장 배로 달려오라는 호출. 짐 싸들고 열심히 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비금도행 배를 탔고, 멋지게 아침 바다를 구경하려 했지만, 수면욕은 나를 그대로 뱃바닥으로 끌어당겼다. 1시간 반 동안 정신없이 자고 나니 비금도에 도착했다.

비금도의 첫 느낌은 ‘강화도와 비슷할 정도로 규모가 큰’ 섬이란 점이었다.
실제로 비금도의 크기가 얼마나 큰 지는 잘 모르겠지만 차를 타고 꽤 오래 달린 듯 한데 섬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산도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었다. 이렇게 크니까 농업이 주요 수입원 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에 실린 차들


이런 배에 차를 싣고 간다..


술은 역시 섞어야 제 맛이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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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 출신 선배의 집에 인사차 들렀다. 한 때 비금도 농협 조합장(서울촌놈인 나는 잘 모르지만,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한다)이셨던 선배 아버님께선 “한 잔 해야지?” 하시더니 아침 9시부터 양주와 맥주를 내오셨다. 본인만의 깔끔한 비율로 양맥 9잔을 예쁘게 타주신 아버님과 함께 오전 음주를 즐겼다.

양맥은 저리 치워두고 달려들었던, 처음 먹어보는 민어회의 맛은 일품이었다.
민어회 먹으면 광어나 우럭은 회도 아니여~라는 아버님. 그럼 나는 지금 까지 만날 회도 아닌 회를 비싼 돈 주고 먹었단 말인가? 여하튼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민어회의 맛은 최고였다. 살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지 않으면 아까울 것 같다.
(7월 말 즈음이 민어 철 이란다. 어쩐지 맛있더라)

푸짐한 회 차림상


위와 같은 식사를 아침/점심 먹었다. 회만 민어에서 병어로 바뀌었을 뿐. 푸짐 푸


우리의 아지트 펜션 그리고 민소매자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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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9명이나 됐기 때문에 차마 선배 집에 신세를 질 수 없었기에 펜션을 빌려서 펜션에서 머물기로 했다. 신안군 4대 해수욕장 중 하나라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밴을 타고 시원하게 달리고 해변에 있는 펜션에 도착했다. 이름 모를 해수욕장이지만 펜션 바로 앞에 모래사장도 있었고, 바다낚시 할 바위지대도 있었다.

신기한 하트 모양의 해변

신기한 하트 모양의 해변. ^^ 비금도에서도 홍보 중이었다.


항상 햇빛의 힘을 무시하던 나는 용감하게 검은 민소매를 입고 해수욕장으로 뛰어갔다.
다른 선배들은 흰색 긴팔티셔츠를 입고 들어가던데, 좋지도 않은 몸매를 자랑하기 위함도 아닌데, 그렇게 내 몸은 타들어갔다.
거멓게 그을린 민소매 자국이 보이는 사진이 남아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탔다.

 

묵었던 펜션의 모습
우리가 신세졌던 펜션

 

뻘에서 잡아 올린 모시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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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선배 집에 들렀다.
아버님께선 어김없이 양맥을 친히 타주셨다. 이제 오후 1시인데 벌써 양맥만 몇 잔 째다.
그래도 병어회와 함께 모시조개오이냉국 도 먹으며 배부른 점심을 먹었다.

이제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뻘에 들어갈 차례. 뻘에 들어가서 모시조개를 잡는 스케쥴(?)이 남았다. 15년 전에 가족여행 때 서해안 갯벌에서 조개 잡던 것 생각하고 길을 따라나섰던 나는, 도랑 같은 데 그대로 풍덩 들어 가버리신 선배 어머니를 보고 “뭔가 잘 못 됐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던 갯벌 조개잡이와 다른 방식이었다. 도랑에 고여 있는 바닷물(다리가 푹푹 빠져서 그대로 서도 배까지 물이 찬다)에 머리만 빼놓고 들어가, 두 손으로 뻘을 휘저으면서 손에 걸리는 모시조개를 잡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뻘의 느낌이 어색했지만 한 번 들어가니까 “이왕 버린 몸 그냥 푹 담그자~” 하고 완전 열심히 조개를 잡았다.

결국 10명이서 열심히 잡은 모시조개를 갖고 가서, 집에 가는 길에 9봉을 나눠서 챙겨갔다.
나는 이 모시조개를 서울에 계신 어머니께 갖다 드리고, 조개 국을 끓여달라고 했다.
조개살은 굉장히 맛있었지만, 입안에 감도는 모래의 촉감은 참으로 쌉쌀했다.^^

아무튼 평생 이런 경험 많이 해보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도랑에서 조개를 잡는 글쓴이

바닷물이 들어 찬 도랑에서 조개를 잡았다. 전부 mud 다.


그대 후릿그물이라고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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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일행은 오후 5시경까지 펜션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 지 모선배가 바다에 낚시를 하러 가자고 한다. 그것도….후릿그물이라는 50m 짜리 그물을 들고 바다에 들어가서 직접 그물을 뭍으로 끌어와 고기를 잡는 방식으로 말이다.

당시..날씨도 흐리고 비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선배의 눈빛에선 “발버둥쳐도 소용없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조용히 웃통을 벗고 밖에 나가서 준비운동을 했다. 휴…

[낚시 방법] :
남자 4명이 목까지 물이 찰 때까지 바다에 들어간다.
그리고 2명씩 쌍으로 그물 양쪽을 잡고 갈라진다. 그물이 끝까지 퍼지면,
그물 아래가 뜨지 않도록 조심하며(아래로 고기가 빠져나가니까) 해변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한 세 번 정도 했던 것 같다. 팔뚝만한 숭어 한 마리와 여러 마리의 꽃게들 그리고 각종 잡어들이 가득했다. 잡어들은 살려주고, 숭어와 꽃게를 들고 펜션으로 돌아와서!! 숭어는 바로 회쳐먹고, 꽃게는 다음날 라면을 위해 숙면상태에 취하셨다.

이 후릿그물 낚시가 이번 비금도 여행에서 가장 재밌었던 기억이다.
비록 몸이 달달 떨리도록 추웠지만, 내 한 몸 써서 고기를 잡는 경험이 얼마나 재밌는가!
또, 석양과 함께 봤던 무지개도 정말 아름다웠다. 바다 쪽은 석양이 비치고, 해변 쪽으로는 무지개가 떠 있는 광경을 본 적 있는가? 그물질하다가 바라 본 그 광경은 예전 지리산 천왕봉 일출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무지개

 무지개 ^^
일몰

 그리고 일몰..그물질 하면서 바라보니까 마치 내가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에 있는 것 같았다.

 

글쓴이가 잡은 숭어를 들고 찍은 사진

 딴 데 보지 말고 숭어를 보시라. 저 숭어님이..5분 후에 회가 되셨다.
오른쪽이 필자….저~위에서 말한 민소매자국이 뚜렷이 보인다.



지역전문가와 함께 한 비금도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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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 선배의 동생이 오셨다. 나랑 동갑이어서 친구 먹으려고 했지만 초면에 반말하기는 어색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에 나가 살았던 선배와 달리, 동생은 비금도 토박이 스러웠다. 낚시 포인트, 낚시 방법, 염전과 시금치 등 비금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홍반장 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그분과 함께 비금도 드라이브를 떠났다. 옆의 섬과 연결된 다리를 지나, 최근에 오픈한 캠핑장과 부두 등을 보여주며 비금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셨다. 서울촌놈인 나에게는 모든 것이 멋져 보이고 자연친화적으로 보인다. 녹색경영은 도시에만 있는 것일 것이다. 이런 곳은 “녹색” 그 자체다. 나이 들어서 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진짜 살라고 하면 힘들겠지….)

아치형 다리 위에서 먼 풍경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원래 공상과 고민을 즐기는 나이지만 그때는 그냥 바다에 비친 달빛 구경하기에 바빴다. 고뇌와 스트레스를 잊게 만드는 바닷가 드라이브.

 

바닷가 야경

 

이 밤의 끝을 잡기엔 너무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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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어회, 모시조개탕과 함께 밤은 깊어만 갔다. 허나 12시가 넘으니 마음은 술상에 있지만 몸은 점점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이한 현상에 휘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금요일) 딱 2시간 자고 배타고 비금도 온 후에 한 숨도 못자고 하루 종일 놀았으니 피곤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결국 나는 모시조개탕이 끓고 있을 때 쓰러졌다. 다음날 일어났지만 언제 잤는지 기억이 안 났다.
남아있는 것은 싱크대에 남아있는 한 바가지의 조개껍질 뿐…
선배들이랑 간만에 진지한 얘기 좀 하려고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30살인 내가 막내였으니 다른 분들은 더 피곤했을 것이다. 선배 동생이 낚시와 비금도 얘기를 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모시조개탕

 시원~하이


Come back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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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 훌쩍 지나갔다. 금요일 오후에 퇴근했으니 하루 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쨋든 아침상은 근사한 꽃게라면!! 국물이 구수했다. 아! 새우도 여러 마리 들어갔으니 꽃게 새우탕면이라고 해도 되겠다. 컵라면 새우탕면과 비교가 안 되는 깔끔한 국물 맛. 못 먹어 본 사람은 말을 말아라..

다시 배를 타고 목포로 돌아간 일행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수원으로 향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오는 길에 우리를 환영해 주었던 것은 적란운이었다. 적란운이란 이름이 맞는 진 모르겠지만, 차창 밖으로 저 멀리 검은 먹구름이 길게 세로로 서 있고, 그 밑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 구름이 여럿 되었다. 넓은 대지를 가진 나라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한 시야에 두 세 개의 구름이 비를 뿌리고 있었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하다…

구름

위에서 묘사한 장면은 아니지만..저 구름 아래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일요일 오후 6시쯤 수원에 도착했다. 얼른 방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쉬고 싶었지만,
사실 피곤함을 따지면 운전하신 분들이 가장 피곤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한다.


(갑자기 급 마무리다..)
2박 3일 동안의 비금도 여행. 여유 있게 쉬거나 편하게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스케쥴을 짜 놓으신 선배 덕분이지만, 군말 없이 함께 즐겨준 일행(다 선배님들)들에게도 참 고맙다. 언제 다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항상 “초록색이 그립다”, “맑은 공기 마시고 싶다” 라고 옹알대지만 실제로 몸을 옮겨본 적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해 또 하나 얻은(?) 게 있다면 바로 “차 지름신” . 아직도 귓가에 얼른 차 한 대 뽑으라는 악마가 속삭인다. 차가 있어야 이런 여행을 쉽게 쉽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사실..의지만 있으면 차 없이도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것 알지만, “차가 없어서 여기저기 못 다니고 있다”는 핑계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함인 것 같다.

모두들 고맙고. 머릿 속에 꼬여있던 고민과 가슴 속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보내 준 여행님께도 고맙다.

 


* 본 게시 글의 모든 사진은 함께 여행한 선배님들(정모, 강모, 명모 형님) 작품입니다.

서인용 S/W Platform2 그룹(무선) 사원

* 본 게시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삼성전자의 입장, 전략 또는 의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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