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과 기후변화, 그 오묘한 함수관계
폭염(暴炎). 올여름, 전 세계 매스미디어가 앞다퉈 헤드라인 뉴스 소재로 다루고 있는 키워드다. 실제로 지구, 특히 북반구를 중심으로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는’ 이상고온 지역이 급격하게 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6월 2일 첫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이후 (근대적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기온은 왜 이렇게 갑작스레 올라가는 걸까? 앞으론 또 얼마나, 어디까지 올라갈까? 계속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니, 살아갈 수 있긴 한 걸까?
지구온난화 현상, ‘기후학 용어’서 ‘정치적 의제’로
올 6월 중순부터 북반구를 덮친 일명 ‘열파(熱波)’ 현상은 이례적 여름 고기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위 왼쪽 그림에서 보듯 고기압은 대기 상층부에서 찬 공기가 밀고 들어오면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찬 공기가 유입되려면 날씨가 추워져야 한다. 여름에 저기압으로 흐린 날이 많다가 가을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면서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고기압 상태로 바뀌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극지방에서부터 저(低)위도 지역으로 찬바람이 항상 불어오고 있다. 이 바람이 지난겨울을 유독 춥게, 올여름을 유독 덥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북극권과 저위도 지역 사이엔 찬 제트기류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제트기류가 보이지 않는 벽처럼 찬 공기를 가둬두는 역할을 하는 것. 하지만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저위도 지역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이 벽이 얇아지면서 따뜻한 공기가 극지방으로 이동한다. 그와 동시에 북극권의 냉기도 저위도 지역으로 내려온다. 차고 무거운 공기가 지표면으로 하강하면 공기가 압축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인해 열이 발생한다. 거기에 뜨거운 지표면의 열이 합쳐져 지표면 부근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이 고기압 구조가 저위도 지역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공기 덩어리 세력과 팽팽하게 맞서면 대기 자체가 정체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위 오른쪽 그림과 같다. 뜨거운 공기 덩어리가 땅에 거대한 뚜껑을 씌워놓은 것처럼 돼 공기가 잘 움직이지 않고 열기는 계속 축적되는 것이다. 열파와 히트웨이브(heat wave)에 이어 최근 매스미디어에서 자주 언급되는 ‘히트돔(heat dome)’은 열기로 이뤄진 돔 모양 대형 구조물이 지구 북반구 곳곳을 덮고 있는 모습을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근본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지구온난화 현상이다. 실제로 지난해 1월 18일<현지 시각> 미국 우주항공국(NASA) 소속 기후학자 개빈 슈미트(Gavin Schmidt)는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히트돔(히트웨이브) 현상 발생 원인에 대해 “지구온난화 현상이라는 전체적 과정 요인 90%, 지역별 특성에 따른 변이 요인 10%가 합쳐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상고온 현상과 그에 따른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기후학자이기도 한 사이먼 루이스(Simon Lewis)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는 지난달 6일<현지 시각>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일침을 날렸다. “히트웨이브 현상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린 기후변화에 신속히 적응해야 한다. 물과 주택, 농업…. 공적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이 문제가 정치적 의제에서 최우선 순위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ICT로 구축된 집단지성, 기후변화 대응에도 ‘영향’
‘날씨가 해마다 더워진다’는 명제는 만국 공통이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생태계 특성에 따라 그 문제를 보다 절박하게 인식하기도 한다. 스위스 알프스가 고향인 신학자 루카스 피셔(Lukas Vischer) 박사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제연합(UN) 제네바 사무소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관련 시민단체 운동을 이끌어온 그는 알프스 만년설이 빠르게 녹으며 산사태 피해가 잦아지는 걸 목격한 후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알리 나세르 모하메드(Ali Naseer Mohamed) 군소도서국가연합[1] 의장 역시 자신이 나고 자란 몰디브가 지구온난화 현상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에 잠기는 걸 지켜보며 기후변화 대응 운동에 뛰어든 경우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주변 환경에서 뭔가 이상을 느껴 △문제를 개선해보려 노력하던 중 △그 본질이 실은 지구적 차원의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후 △국제적 동참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단 데 있다. 말하자면 “지역에서 지구로(From local to global)”라고나 할까?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지구온난화 현상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1988년 UN 산하 기구가 출범하며 본격화됐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패널(IPCC)’[2]로 이름 붙여진 이 조직의 구성원은 대부분 해당 분야 전공 과학자와 세계 각국의 관련 정책 담당자다. 지금 이 시각에도 이들은 세계 각지 과학자들과 힘을 합쳐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현상, 그리고 그 둘이 인간 삶에 끼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오고 있다.
출범 초기, IPCC 내부에선 “지구온난화 현상과 (그 결과로 나타난) 기후변화의 주범은 인간(의 행동)”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인간이 스스로의 편리를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해온 화석연료 때문에 지구온난화 현상이 생겨났단 얘기다. 이에 따라 대책 역시 ‘에너지 절약’과 ‘대안 에너지 개발’ 등으로 좁혀졌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 사용이 세계적으로 대중화되고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도구가 쏟아져 나오면서 이 같은 노력은 이전과 좀 다른 양상을 띠게 됐다.
단적인 예가 지리적정보시스템(GIS)[3]이다. GIS는 지리 정보를 분석·저장·시각화해 활용 가능성을 높인 컴퓨터 기반 도구. 각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상세 정보를 지구적 차원에서 취합,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그뿐 아니다. 과거 기후 변화 상황을 분석, 그 결과를 관심 있는 사람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도 해준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기후변화 설명에 효과적인 그래픽과 동영상 등의 수단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ICT가 복잡한 자연 현상에 대한 인간의 지식 수준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2016년 3월 2일자 스페셜 리포트 “‘100년 만의 빅뉴스’ 중력파 최초 탐지, 그 이면엔 IT가 있다?!”에서도 확인했었다.)
ICT는 기후학이나 지구과학처럼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분야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몇몇 전문가로 참여 자격이 한정되던 국제회의를 조직할 필요 없이 온라인 토론 형태로 다양한 사람이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그렇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집단지성 구축이 가능해진 셈이다(집단지성의 기본 개념이 궁금하다면 2015년 4월 1일자 스페셜 리포트 “임직원 지혜 모았다, 아이디어 날개 달았다_1주년 맞은 삼성전자 집단지성 시스템 ‘모자이크’”를 참조할 것).
기후변화 분야에서도 이 같은 집단지성의 결과로 새로운 사실이 제법 확인돼 온라인 공간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요즘처럼 세계적 규모로 급속히 진전되는 지구온난화 현상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고, 지구가 생긴 이래 줄곧 주기적으로 이런 변화를 거쳐왔단 사실도 밝혀졌다. 온난화 경향은 지구뿐 아니라 태양계 내 다른 행성과 태양계 밖 다른 성체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란 점도 드러났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면 대응 전략도 그에 맞춰 바뀌게 마련이다. 지구온난화 현상도 마찬가지다. “지구온난화 현상은 일종의 천재지변과 같아서 인간의 노력으로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지구 전체가 계속 더워지고 있는 만큼 이산화탄소 발생량 저감 등 인간이 시도할 수 있는 노력은 최선을 다해 지속하는 게 옳다. 지금껏 국제사회도 이 관점에서 해법을 모색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 “그게 전부는 아니다”란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응하는 전략은 ‘완화(mitigation)’와 ‘적응(adaptation)’ 등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완화는 말 그대로 지구온난화 경향을 약화시키려는 노력을 일컫는다. 화석연료 사용 자제 등이 이 범주의 대표적 행동이다. 반면, 적응은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즉 “무작정 참고 견딜 게 아니라 지구온난화 현상 자체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입각, 인간 삶도 구조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적응 범주의 입장이다. 그리고 지구온난화 현상을 둘러싼 국제 논의의 초점은 완화 쪽에 집중됐던 과거와 달리 최근 눈에 띄게 적응 쪽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적응 전략은 완화 전략에 비해 훨씬 더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사이먼 루이스의 주장처럼 물 사용이나 주택, 농업 등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불가피하단 사실을 이해한다면 향후 해안가 저지대엔 주거지를 비롯, 주요 구조물을 배치하지 않아야 한다. 이 같은 논의는 지구온난화 현상에 관심 갖고 행동을 촉구하는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 최근 들어 부쩍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인간, 첨단 기술 업고 ‘지구서 살기’ 노하우 익히다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지구가 갑자기, 그리고 강도 높게 뜨거워진 건 약 12만5000년 전 이후 처음이다. 지구사 전체를 통틀어 생각하면 비교적 최근이지만 인간의 기억 속 과거를 떠올리면 한참 오래전 일이다. 다행히 인간의 유전자정보는 의식보다 훨씬 기억력이 강한 편이다. 인류가 수 차례 이어진 고강도 지구온난화 현상을 견뎌내고 진화해온 건 그 덕분이다. 어쩌면 현대인은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요즘 같은 폭염에 적응하며 또 한 차례 진화 중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향후 몇 백 년간은 지금과 같은 온난기가 지속될 것”이란 게 다수 전문가의 전망이다. 다만 기온이 어느 정도까지 오를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별 생태적 특성에 따라, 또 거주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녹지 생태계가 잘 보전된 지역의 온난화 경향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완화될 수 있다.
급변하는 기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종(種)은 절정의 순간, 갑자기 무너지기도 한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이미 기후변화의 역사를 다룬 연구 상당수가 그런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기술 발달이 궤도에 오르지 못했던 예전엔 문명이 붕괴되는 순간, 수많은 인간이 왜 힘든지조차 모른 채 고통 받으며 살아갔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온난화 현상의 양상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ICT 발달에 기댄 집단지성 덕에 주어진 상황을 단순 재앙으로 여기고 두려워만 하진 않게 됐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지구온난화 현상이 지구, 아니 우주 전체적인 현상이란 사실을 간파한 후 다양한 형태의 소통을 통해 인류 전체의 행동을 조율함으로써 피해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위기를 기회로 바꿔가고 있다. ‘지구에서 살아가기’ 노하우를 ICT가 인간에게 전수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1] Alliance Of Small Island States(AOSIS). 해수면 상승으로 존폐 위기에 놓인 대서양 일대 군소 도서 국가들의 연합 모임
[2]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세계기상기구(WMO)와 UN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했으며,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0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3]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지도∙지하시설물 등 지형(관련)정보를 인공위성으로 수집, 컴퓨터로 재구성해 검색·분석이 가능하도록 구축한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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