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마실 커피, 기왕이면 알고 마시자!” 의기투합한 ‘삼성전자 커피 섬’ 주민들
커피는 6세기 에티오피아 승려들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국내에 들어온 건 1895년(고종 19년). 120여 년 만에 명실상부한 ‘국민 음료’로 자리 잡았다. 커피 인구가 급증하며 요즘은 남다른 종류의 커피를 즐기거나 ‘나만의 커피’를 손수 만들어 마시는 사람 수도 꽤 늘었다. 삼성전자에도 ‘커피 마니아’가 제법 많다. 사내 동호회 ‘커피 아일랜드(Coffee Island)’도 그런 이들의 집합소 중 한 곳. ‘커피 동호회에선 어떤 활동이 이뤄질까? 내내 커피만 홀짝거리는 건 아니겠지?’ 지난 5월 17일, 이런저런 궁금증을 안고 커피 아일랜드의 ‘정모(정기 모임)’ 현장을 찾았다.
나폴레옹 즐겨 마셨던 카페 로얄, 손수 만들어볼까?
▲커피 아일랜드 회원들은 매주 한 차례 모여 직접 초빙한 전문가에게서 커피 관련 강좌를 듣고 배운 내용도 공유한다
커피 아일랜드 동호회실은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임직원이 근무하는 나노시티(경기 용인시 기흥구 농서동) 내 나노파크(Nano Park)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히 회원들도 전원 DS부문 소속이다.
뉴스룸이 이 공간을 찾았을 때, 회원들은 ‘특강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이날 운영진이 준비한 특강 제목은 ‘카페 로얄(Café Royal)과 사이폰(syphon) 커피 만들기’. ‘왕족의 커피’란 뜻을 지닌 카페 로얄은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1세가 즐겨 마신 커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용 스푼을 컵에 얹고 △그 위에 브랜디를 약간 부은 후 △각설탕을 올려 불로 녹인 다음 △녹은 설탕을 커피와 잘 섞어주면 제조 끝. 한 모금 마시면 기분 좋은 단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이날 특강의 주제는 ‘카페 로얄(왼쪽 사진)과 사이폰 커피 만들기’였다. 오른쪽 사진은 진공 커피 포트(vacuum coffee maker)로 사이폰 커피를 내리는 모습
카페 로얄은 이영석(반도체연구소 메모리TD[1]실) 회원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이기도 하다. 그는 “예전에 우연히 (카페 로얄을) 한 번 마셔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정작 만드는 법을 몰라 아쉬웠었다”며 “오늘 강의 덕에 레시피를 익히고 그때 그 맛도 다시 느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1] Technology Development(기술 개발)
▲특강 도중 사이폰 커피가 추출되는 과정을 진지하게 지켜보는 커피 아일랜드 회원들
‘퍼콜레이터(percolater) 커피’라고도 불리는 사이폰 커피는 진공 밀착된 상태에서 아래위로 연결된 두 개의 플라스크를 활용, 증기의 압력과 물의 삼투압으로 추출해내는 커피를 일컫는다. 독특한 제조법의 영향으로 깔끔하고 깊은 맛을 내는 게 특징. 특히 물과 커피 분말, 알코올램프가 빚어내는 커피 추출 현장은 학창 시절 과학 실습 시간을 연상케 했다. 실제로 이날 회원들은 연령이나 직급에 관계 없이 진공 커피 포트에 시선을 고정하며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카페 투어’ ‘전문가 특강’ 등 탄탄한 프로그램 강점
커피 아일랜드의 슬로건은 ‘커피, 제대로 알고 마시자’다. 박지숭(반도체연구소 마스크[1]개발팀)<위 사진> 회장은 “커피 인구가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정작 커피를 잘 알고 마시는 사람은 드물지 않느냐”며 “동호회 명칭엔 ‘누구나 섬(island) 같은 휴양지에 모여 편안히 쉬면서 커피를 주제로 소통하는 공간’이란 지향점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커피 아일랜드는 2012년 3월 설립된 후 만 5년 넘게 순항하고 있다. 그간 회장도 두 차례 바뀌었다(박지숭 회원이 3대 회장이다). 역사가 짧지 않은 만큼 운영은 꽤 내실 있다. 매주 열리는 특강과 비정기적으로 꾸려지는 카페 투어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국내외 커피 명소를 둘러보는 카페 투어는 회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동호회 활동이다. 올해만 해도 강원도 강릉과 일본 도쿄에서 각각 카페 투어가 진행됐다. “원래 여행을 좋아한다”는 김세라(파운드리[2]사업부 품질팀) 회원은 “카페 투어를 다니다 보니 커피도 지역별로 그 특징이 뚜렷이 구분되더라”며 “앞으로 예정된 카페 투어도 부지런히 다니며 다양한 지역 커피를 고루 체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1] mask. 반도체 집적회로 제조 공정 중 포토공정(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그려 넣는 과정) 시 사용되는, 미세한 전자회로가 그려진 유리판
[2] foundry. 다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 공급해주는 사업
▲4월 2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소재 카페를 찾은 커피 아일랜드 회원들이 커피 맛을 음미하고 있다. 커피 아일랜드는 맛으로 이름난 국내외 유명 카페를 방문하는 일명 ‘카페 투어’ 프로그램을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매주 진행되는 전문가 특강도 회원들 사이에서 호응이 크다. 시중에서 쉽게 맛보기 힘든 이색 커피 시음 기회가 제공될 뿐 아니라 잘 모르고 마셨던 커피 관련 상식도 높여주기 때문.
▲주 1회 마련되는 커피 아일랜드의 커피 특강은 종종 실제 카페에서 야외 수업 형태로 진행된다
가끔은 동호회실을 벗어나 로스팅 기계가 갖춰진 인근 카페 등에서 ‘야외 수업’이 이뤄지기도 한다.
“우리의 지향점? ‘섬에서 휴양하듯’ 커피 즐기는 공간”
▲신입 회원 환영 행사도 커피 아일랜드의 주요 활동 중 하나다. 새로 합류한 회원은 이 자리에서 ‘가입 선물’로 커피 추출기를 받는다
모든 사내 동호회가 그렇듯 관심사가 같은 동료를 사귈 수 있는 것 역시 커피 아일랜드의 매력이다. 다행히 삼성전자 임직원 중에서도 커피 애호가가 늘고 있는 추세여서 신입 회원 환영회나 송년회 같은 주요 행사장은 늘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고.
▲지난해 송년회엔 33명의 회원이 자리를 함께했다
박지숭 회장은 “신입 회원이 많이 들어와 올해 송년회도 성황을 이룰 전망”이라고 귀띔했다.
회원들이 말하는 “내가 커피 아일랜드를 선택한 이유”
최건식(파운드리사업부 글로벌운영팀)<위 사진> 회원은 ‘평생 함께할 커피, 제대로 알고 마시자’는 생각에 커피 아일랜드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사 먹는 커피에선 쓴맛과 단맛만 느껴지는데 드립(drip) 커피[1]엔 신맛과 부드러운 맛, 과일 향 등이 고루 느껴진다”며 “각자 기호에 맞게 원두의 종류나 온도, 추출 방식을 달리할 수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1] 잘게 빻은 원두에 끓는 물을 부어 걸러내는 커피
이영석<위 사진 가운데> 회원은 매주 사업장 곳곳을 돌며 임직원에게 커피를 나눠주는 회원들의 봉사에 감명 받아 커피 아일랜드에 가입한 경우. 그는 “동호회 활동을 하며 평소 맛보기 힘들었던 희귀 커피를 다양하게 마실 수 있어 좋다”며 “세상 모든 커피를 마셔본 후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커피를 찾아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인형렬(메모리사업부 플래시[1]개발실)<위 사진> 회원은 커피 아일랜드의 최대 장점으로 전문가 특강을 꼽았다.
[1] 플래시메모리(flash memory)의 줄임말. 전원이 끊겨도 저장된 데이터가 보존되는 메모리 반도체를 일컫는다
“특강에서 배운 걸 활용해 요즘은 커피를 직접 만들어 마십니다. 비싼 기계를 장만하지 않아도, 간단한 도구만 있어도 풍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죠. ‘나만의 커피’를 만드는 노하우를 조금씩 갖춰가는 것 같아 좋습니다.”
▲김선희(사진 왼쪽) 회원과 김세라 회원은 매주 특강에서 배운 레시피를 활용, 다양한 커피를 손수 만들어 마신다
‘워킹맘’인 김선희(파운드리사업부 품질팀) 회원은 바쁜 일과 틈틈이 집에서나마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기 위해 커피 추출 기구를 들여놓았다가 “좀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커피 아일랜드에 합류했다. 김세라 회원은 커피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며 ‘나만의 커피’ 레시피를 발견하기도 했다. “일명 ‘탄산 커피’라고요. 탄산수에 커피 원액을 넣고 잘 섞어주기만 하면 돼요.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꼭 한 번 시도해봐야 하는 맛이죠.”
두 회원에게 커피는 “잠을 깨고 멍했던 정신을 맑게 해주는 음료”인 동시에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소통의 연결고리”다.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할 때 ‘얘기 좀 할래?’보다 ‘커피 한 잔 할래?’란 말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잖아요. 나이나 직급에 관계 없이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때에도 커피만큼 좋은 매개체가 없고요.”
▲방지훈 강사는 “커피 아일랜드 회원들은 ‘최고의 커피 전문가가 되겠다’ 같은 목표를 갖는 대신 커피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소통하려 노력하는데 그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회원들의 왕성한 ‘학구열’은 베테랑 강사도 긴장시킬 정도다. 이날 특강을 진행한 방지훈(35) 양미라커피교실 강사는 “커피 아일랜드 회원들과 함께한 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며 “매 강의 때마다 온 신경을 다해 집중하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스트레스를 푸는 회원들을 볼 때마다 강사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원두 산지와 추출법 같은 걸 전문적으로 알진 못해도 커피는 이미 현대인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무심코 넘기기 쉬운 커피 한 모금에도 호기심을 갖고 부지런히 공부하는 커피 아일랜드 회원들을 보며 ‘진정한 취미 활동’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같은 관심사를 타인과 공유하는 일이 얼마나 순수한 즐거움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도! 아래 사진 속 회원들의 표정을 보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드립 커피를 맛있게 내리려면 로스팅[1]과 그라인딩[2], 브루잉[3] 등 세 가지 공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라인딩 공정에선 로스팅된 원두 굵기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므로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라인딩이 끝난 원두에 물을 부을 땐 핸드드립 주전자를 활용하는데, 이때 물의 온도는 90℃ 내외가 적절하다.
[1] roasting. 생두(green bean, 커피나무 열매 씨앗)에 열을 가해 볶는 공정
[2] grinding. 그라인더(원두 분쇄 기계)를 활용, 원두를 가루 상태로 만드는 일
[3] brewing. 적정 온도로 끓인 물을 커피에 부어 추출하는 방식
① 핸드드립 주전자에 물을 넣고 90℃ 내외로 끓인다
② 커피 드리퍼에 거름종이를 깔고 서버에 올린 후 ①에서 끓인 물을 천천히 부어 커피를 추출한다
③ ②에서 추출한 커피를 잔에 담은 후 티스푼에 각설탕을 올려 그 위에 놓는다
④ 각설탕을 향해 브랜디를 일정량 부은 후 토치에 불을 붙여 녹인다
⑤ 녹은 설탕을 커피와 잘 섞어준다
위쪽 플라스크에 원두를 담고 아래쪽 플라스크에 물을 담아 가열하면 사이폰 커피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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